이브온라인에 대한 소개 글이나 관련 글들은 너무나도 많다. 구글에서 이브온라인 이라고 검색만 해도 수많은 글들이 쏟아져나오므로, 나는 다른 얘기를 좀 적어볼까 한다. 나도 사실상 뉴비에 가까울만큼 많은 것을 해보지 못한 유저이므로, 고수가 적는 글이라기보단 초보가 가진 이브의 소감 정도로 보시면 좋을 것 같다.
- 이브온라인은 2003년도에 출시했지만, 그렇다고해서 게임의 그래픽 수준이 그 당시에 머물러있는 게임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업데이트를 해왔기 때문에 현세대 그래픽 수준을 보여주지만, 게임 자체의 특징으로 인해 최소/권장 사양이 매우 낮다.
- 처음 시작한 유저들 입장에서 볼 땐, 상당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게임이다. 대체 이게 왜 재밌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만큼 지루하고, 심지어는 졸릴 때도 있다.
- 이브온라인은 이동(moving)이 게임 내 대부분의 시간을 잡아먹는 행위이며, 그와 동시에 매우 중요한 행위이다.
- 유튜브에 올라오는 각종 트레일러나 유저 동영상, 수천명이 참여하는 거대한 전투를 보면, 내가 이 게임을 시작하면 심하게 중독될까봐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이브온라인 제작사인 CCP 공식 발표에 의하면, 새로 시작한 유저의 90%는 1달이 되기 전에 접는다고 한다.
- 이브온라인은 상당히 정적인 게임이다. 다른 MMORPG처럼 동적인 움직임 같은 건 없이, 거의 대부분을 “데이터” 갖고만 하는 게임이라고 봐도 된다. 심지어는 내 함선과 우주를 보지않고도 플레이가 가능할 정도다. 풋볼 매니저 같다고 보면 비슷할 것 같다.
- 이브온라인은 상당히 어렵고 복잡한 게임이다. 위에서 언급한 풋볼 매니저와 좀 많이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데, 이브온라인은 그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것을 알아야한다. 이브온라인 내 컨텐츠 하나하나는, 대학에서 수업 하나를 수강하면서 그에 대한 공부 & 시험준비를 해야하는 것만큼 공부를 해야한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알려준 (예를 들자면 함선 피팅) 예시대로만 대충 가서 하다보면 되겠지” 라고하면 이 게임에 대해서 이해가 되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고, 다른 유저한테 죽을 확률도 굉장히 높으며, 가장 큰 문제는 왜 내가 죽는지도 모르게 된다. 이브 유저들은 게임 자체는 그닥 어렵지 않다고 한다. 내가 볼 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하는데, 게임 자체는 다른 게임과는 달리 차근차근 공부하면 어떻게 돌아가는지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는데, 다만 그걸 모두 적용시켜서 그 사이에서 살아남는 것, 즉 다시 말해 적응하는 건 말처럼 쉽게 안된다. 그러니까 이런 그림이 나오지.
- 이브온라인의 유저들은 상당히 폭력적이다. 따라서, 여기는 정말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라고 할만큼 위험한 곳이다. 구글에서 이브온라인 관련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나무위키에도 적혀있지만) 이브온라인은 기본적으로 PvP를 적극 장려하며, PvP를 해야만 게임이 제대로 운영될 정도로 중요한 컨텐츠다. 따라서, 이브온라인의 모든 유저들은 극도로 호전적이며, 다른 유저들을 죽이기 위해 사냥을 나서는 것 자체가 굉장히 평범한 컨텐츠일 정도다. 누구와 싸워서 얼마짜리 함선을 파괴시켰는지가 자랑거리가 되는 게임이다. 모든 유저들은 날 죽이고싶어한다는 생각을 갖고 플레이를 해야하며, 함선을 끌고 우주로 나서는 순간 이 함선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해야할 정도다. 당신이 이브온라인에서 비폭력적인 컨텐츠만 하고싶고 아주 안전한 장소로만 다니는 유저라고 해도 상관없다. 다른 유저들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노리고 있으며, 당신이 누구든 뭘 하는 사람이든 개의치않고 그들의 이력서 (킬보드)에 전적을 하나 추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신을 죽이려 할 것이다. 그래서 이브유저는 다들 이렇게 얘기한다: “모두가 당신을 싫어한다” (EVEryone hates you).
- 이브온라인은 마치 또 하나의 직장과 같은 느낌을 갖게한다. 이브온라인 내에 회사 시스템이 만들어져있기 때문만은 아닌데, 이 또한 굉장히 복잡한 이브온라인만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이유를 설명해보자면, 다른 게임과는 다르게 이브온라인은 캐릭터를 삭제하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다. 다른 게임들이라면, 힘들게 구한 귀한 아이템 때문에 삭제를 하지못한다면, 이브는 캐릭터 자체만으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기 때문에 삭제를 못한다. 이브에서 아이템은 캐릭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브에서 캐릭터 삭제는 버튼만 누르면 되긴 한다 (바로 되는건 아니다). 이브온라인에 대한 글을 보면 알겠지만, 스킬을 올리는데 현실과 같은 시간이 들어가고, 왠만한 함선들 타고다니면서 왠만큼 효율이 나올려면 최소 1년 이상은 스킬을 쳐야하는데 (돈을 벌기 위한 인커전이라는 컨텐츠에 참여하는 것도 최소 6개월은 꼼짝없이 스킬만 쳐야한다), 계정비 1년이라는 돈은 둘째치고서라도 1년 동안 친 스킬이 너무나도 아까워서 도저히 삭제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만약 내 캐릭터의 스킬이 3년 4년치 쌓였다면? 절대 삭제 못한다. 다른 MMORPG 마냥 만렙은 금방 찍고, 만렙 이후의 아이템들로 만렙 이후 컨텐츠를 즐기는 그런 게임과는 전혀 달라서, 이브온라인은 만렙 컨텐츠라는 것도 없으며 누구나 게임 내 화폐만 있으면 거의 다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희귀한 아이템은 몇 개 없다. 만약 있다고 해도, 다른 유적의 표적이 되기 쉽다. 따라서, 수년간 키워온 캐릭터를 삭제하는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며, 따라서 게임 속에서 내 캐릭터는 나와 거의 같은 정체성을 갖게 된다. 게임 내에서 누구에게 원한 살 일은 되도록 하지말아야하며, 택배업 같은 일을 하려면 내 캐릭터에 대한 일종의 신뢰도 역시 충분해야한다는 거다. 물론 신뢰도라는 개념은 없지만, 적어도 다른 유저들에게 나쁜 유저로 인식되진 않아야한다는 얘기다. 게임은 게임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없이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하면 되지만, 위의 예를 든 것은 첫줄의 “또 하나의 직장과 같은 느낌을 갖게한다“라는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 이브온라인은 굉장히 정치적인 게임이다. 다른 게임처럼 컨트롤을 잘해야하거나 아이템이 좋아야하는 게임이라기보단, 정치질을 잘해야하는 게임이다. 게임 내 상당히 많은 세력이 분할되서 서로 싸우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인끼리도 세력과 정치/음해/공작 사건/시도가 있어왔기 때문에 처신을 잘해야하며, 그 사이에서 생기는 분쟁을 잘 대처해야한다.
- 이브온라인은 시간을 많이 들여야하는 게임이다. 캐릭터가 성장하는데 현실시간과 같은 시간이 들어가며, 게임을 꺼도 캐릭터가 계속 성장하기 때문에,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에게 좋은 게임이라고 한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인데,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에도 내 캐릭터는 성장하고 있으니 이점은 분명 좋긴하지만, 캐릭터의 스킬이 많다고해서 이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한지 한 달도 채 안되는, 하루에 12시간씩 PvP만 하는 뉴비가, 스킬만 1년 넘게 찍은 직장인보다 게임을 훨씬 더 잘한다.
- 이브온라인은 한 번 시작하면 돈을 많이 쓰게 된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알파라고 하는 일종의 체험판으로 먼저 시작을 해서 대충 나한테 맞는 게임인지 아닌지를 보기위해 간을 보고, 좀 재밌다 싶으면 계정비를 내고 시작하게 된다. 월 계정비가 한국에서 스팀을 이용하면 만원도 안되는 걸로 알고있는데, 이 만원이 아까워서 알파만 계속하는 유저들이 상당히 많은 걸로 알고있다. 그런데, 정작 계정비 내면서 오메가로 시작하게 되면, 스킬을 단축시켜주는 아이템부터 시작해서 게임 내 화폐 구입까지 나도 모르게 돈이 쓰고싶어진다. 돈을 쓰게하는 게임은 절대 아니다. 또한, 그렇게 돈 쓴다고 남들보다 쎄지는 것도 절대 아니다. 단지 “내가 안달이 나서” 돈을 쓰게 된다.
- 이브온라인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컨텐츠가 아주 적다. 예를 들어서 이브온라인의 모든 컨텐츠가 10개라면, 이 중에서 혼자서 할 수 있을만한건 반 정도 밖에 안된다. 게임의 모든 컨텐츠를 즐기려면 다른 유저들과 같이 게임하는 것을 넘어서, 회사에 입사하고 얼라이언스에서 활동도 많이 해야하고, 계정도 하나만으로는 모자라서 2개 3개씩 부캐를 키워야 많은 컨텐츠를 즐길 수 있다. 물론 관심이 없는 분야는 안해도 되겠지만, 그만큼 이브온라인의 컨텐츠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 이브온라인에 빠지면 다른 게임은 안하게 된다. 다른 게임들에 관심도 없어지게 되고, 이거 하나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또 하나의 직장과도 같은 느낌인데다 꾸준한 연습과 게임에 대한 이해를 위한 공부가 필요한 게임이라, 집에 오면 자연스레 이브부터 접속하게 되고, 게임을 하든 안하든 게임 내 채팅창으로 다른 사람들과 하루종일 수다를 떨게 된다. 심지어 게임을 하지않는 시간이라도 함선 피팅 프로그램으로 곧 타게될, 혹은 타고싶은 함선들의 부품을 이리조리 조합해보기도 하고, 어떤 함선을 타기위해 어떤 스킬이 필요한지 플랜을 짜기도 한다. 어떤 유저들은 게임 내 활동보다 게임 외 활동들이 더 재밌는 게임이라고도 한다.
- 이브온라인은 유저들이 만들어서 운영하는 웹사이트들이 상당히 많다. 그냥 블로그 같은 홈페이지가 아니라, 이브온라인 내 상품들의 판매가격 및 구입가격 등의 시세를 조회하는 사이트, 현재 내 캐릭터의 모든 현황을 보여주는 사이트, 이브 내 모든 유저들이 어디서 전투를 치뤘고 어떤 함선으로 전투를 했으며 얼마를 날렸는지 전투의 모든 현황을 보여주는 사이트 등등 수없이 많다. 이는 이브온라인 제작사가 제공하는 HTTP 기반 API를 통해, 게임 내 데이터를 외부로 불러올 수 있게 해준 덕분인데, 이걸 통해서 수많은 웹사이트들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래서 직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나 학교에 있을 때도 물품들의 시세도 확인해볼 수 있고, 언제 어디서 어떤 전투가 일어났는지도 볼 수 있다.
- 이브온라인은 굉장히 컴덕스러운 게임이다. 리눅스 다뤄보신 분들은 쉽게 이해하실텐데, 게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행동과 언어는 대부분이 로그가 남는다.
- 이브온라인에서 유저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상권, market)은 쉽게 설명하자면, 이브온라인의 플레이어들은 마치 소매치기와 깡패들이 입구 앞에서 서성대고있는 다운타운 아래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일반적인 물품들은 나름의 가격표와 시세가 있어서 다른 시장보다 훨씬 저렴한 값에 구매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물품에 대해서는 시장 내 상인들은 어떻게 하면 이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워서 돈을 날로 먹을까 하는 궁리만 하고, 물품 구입해서 나가면 이 외국인이 구입한 물건을 뺏어가기위해 눈치만 보고있는 소매치기와 건달들이 바글바글한 시장 출입구를 빠져나가는 듯한, 실제로 게임 내 대형 상권 중 하나인 Jita를 가면 이런 느낌을 받는다.
이상 생각나는걸 적어봤는데, 궁금하신 사항이 있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으면 댓글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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