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개월 전에 와이프가 겪은 일이다. 동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한쪽 어깨에는 조그만 백을 하나 메고 양손에는 마트에서 장을 본 물건들을 들고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떤 사람이 가방을 낚아채서 달리면서 바로 앞에 서있는 차에 타서 도망갔다고 하더라. 당시 가방에는 구입한지 딱 1주일 된 아이폰이 있었는데, 현금이야 몇 푼 없어서 상관없었지만 가방, 지갑, 핸드폰 가격만 해도 이미 몇천 달러의 값어치를 하는데다 최근에 갱신한 State ID까지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정부기관들이 문을 닫은지 얼마 안된 터라 ID를 언제 다시 갱신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이폰은 11 SE 2라고 하는 저가형 버전을 구입했었던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고, 다음 해에 출시해서 다시 구입한 아이폰 12의 디자인을 와이프가 워낙 마음에 들어했다.

당시 소매치기가 가방을 훔쳐서 차를 타고 달아났을 때 차 번호판을 똑똑히 봤다고 해서,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여 당연하겠지만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일단 911에 전화를 해서 Theft report를 해서 약 30분 간 통화하면서 상황을 전부 설명했더니 잘 접수됐다며 경찰관을 집으로 보내서 서류작성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경찰관이 오니까, 전화로 설명했던 것을 처음부터 다시 다 설명해야했다. 굉장히 번거로웠는데, 그걸 또 서류에 서술까지 해야해서 정말 귀찮았다. 어찌됐든 제대로 접수되어 접수 카드 같은 걸 받았고, 차 번호판을 봤으니 금방 범인을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1주일 1달이 넘어가도록 아무 소식이 없고,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서도 아예 연락이 없었다. 사고를 겪고나서 한 1주일이 지나도록 경찰한테 연락이 없어서 변호사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단순 절도/소매치기라면 범행에 쓰였던 차의 번호판을 봤다는 정도로는 바로 범인을 검거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그냥 사실상 포기하라면서 친구 와이프도 소매치기를 종종 당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살았던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더 웃기는 건 그 친구 와이프도 변호사다. 그것도 친구랑 친구 와이프 둘 다 주정부에서 Public Defender (국선변호사 정도?)였던 사람들이었다.

하와이가 비록 강력범죄에 한해서는 미국 내에서 1,2위를 다투는 상당히 안전한 곳이고, 소매치기나 절도 등의 경범죄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후 경찰의 대응을 통해 소매치기 등의 경범죄에 대해서는 역시 아무리 하와이가 안전한 곳이라고는 해도 미국은 미국이다 라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다치진 않았으니 처음엔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나,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인지 다치지 않았으니 도난 당한 물품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되더라.

와이프는 이 일을 겪은 이후 트라우마 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일종의 심리적인 불안 같은 것이 생겨서, 혼자 외출할 때는 절대로 가방을 갖고나가지 않는다던가 핸드폰을 들고나가지 않는다던가 하게 됐다. 10년이 넘도록 하와이에 살면서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었는데 겪게 되다보니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