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몸값을 좀 올려보고자, 주립대학 내의 다른 부서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었다. 사실 같은 직장 내에서 포지션을 변경하는 것이니, 이직이라고 하긴 좀 어렵지만 그렇다고 짧은 제목으로 정하기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이직이라고 적었다. 또한, 이 글은 실체라기보단 그냥 경험담인데, 짧은 경험담으로 쓰기엔 내용이 너무 길고, 일반적인 직장에서의 이직 경험이라기보단, 하와이 주립대학 및 주 정부 내 보직 변경에 관한 경험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몇달 전, 주립대 내 단과대학 중 하나인, 번역하자면 해양 및 지구 과학기술 대학 (School of Ocean and Earth Science and Technology) 이하 SOEST 쪽 연구원 하나가 이메일을 보냈다. 내용인 즉슨, 내가 일하는 사범대학의 건물 중에 FROG라고 불리우는, 그러니까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태양광 발전과 건물의 설계만으로 실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시스템이 적용된 건물이 2개가 있는데, 이 건물의 시스템에서 SOEST 서버로 환경 데이터를 전송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전송이 끊어졌고 자기네들끼리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몇달이 지나도록 해결이 안되서 나에게 연락을 하게 된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건물들은 사범대학에 있으니, 네트워크는 사범대학 전용망에 연결되어있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이메일에 몇 번의 미팅을 가졌고, 일단 당장의 문제는 해결이 됐다. 그 일을 계기로, SOEST 측에서 정식으로 나에게 Overload 오버로드로 고용을 하게 됐다. Overload란, 같은 주립대학 내에서 서로 다른 기관들이 특정 직원을 추가로 고용해서 오버타임 식의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인데, 매월 지정된 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하여 해당 직원의 연봉을 기준으로 시간당 인건비를 계산해서 월급날 자동으로 입금되는 방식이다.

내 입장에서는 좀 어이가 없는 부분인데, 주립대의 과학이나 기술을 다루는 단과대학들이 의외로 IT부서가 없다는 점인데, SOEST도 IT 부서가 따로 없어서 주립대 중앙전산실과 중앙행정실의 IT 부서에서 관리를 해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관련 담당자가 학교를 그만두고 본토로 이주하여 현재 공석이 됐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그 직원이 그 포지션에 지원해보지 않겠냐고 얘기했었다. 그 포지션에 있던 직원의 연봉이 나보다 훨씬 더 높았었으니, 지원해서 합격되면 좋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얼핏 얘기해준 바로는,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포지션보다도 연봉이 2만불이 더 높았다. 애초에 미국 공무원 연봉이 얼마 안되는 걸 생각해보면, 2만불은 상당한 차이였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업무 환경은, 한국에서 말하는 신의 직장을 초월하여, 한국 사람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편안하기 때문에 처음엔 관심이 없었으나, 그래도 연봉이 2만불이나 차이가 나면 일을 좀 많이 하는 삶을 살더라도 해볼만은 하지않겠나 싶었다. 그래서 예전 내 부서장이자 현재 하와이 주립대학교 학업성취실 교무처장인 분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이분이 내 부서장이였던 시절, 난 이분이 사범대학을 그만두고 이직할 것이라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어느 날 주립대 내 중앙부처로 옮겨가서 꽤 충격을 받았었다. 안 그만둘 것 같았고, 은퇴할 때까지 내 부서장일 것만 같았었다. 아무튼, 조언을 구했더니, 문화적인 차이가 있으니 걱정말고 지원해보고, 사범대학에 10년 있었으면 이제 옮겨볼만할 때도 되지않았나 라고 얘기하면서, 현재 내 직속 상사하고 상담을 해보라고 했다. 이 또한 문화 충격이었다. 이직을 직속 상사하고 상담해보라니.

그래서 내 직속상사, 그러니까 supervisor와 현 디렉터와 상담을 해봤더니, 주립대 (및 주 정부) 내에서는 현 직원이 다른 부서나 기관 등에게 실제로 job offer를 받았을 경우, 해당 직원을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 counter-offer를 제안할 수 있는 규정이 있으니, 꼭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렇다면, 몸값도 올리고 일하는 것도 그대로면 일석 이조가 아닌가 싶어서 바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SOEST의 연구원이 말한 그 포지션을 지원했고, 인터뷰를 봤으며 (심지어 VP, Vice President와 인터뷰도 했으며), 최종적으로 내가 합격하여 오퍼를 받았다.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예전의 직원이 얼마를 받았건 상관없이, 현재 나의 학력과 경력을 토대로 연봉 평가를 하는데, 학교 측에서 연봉을 평가하는 문서가 공개되어있어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어있다. 본토는 모르겠지만 하와이 주 정부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호봉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호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냥 편의상 호봉이라고 치고, 적어도 이만큼은 제안하겠지 하는 내가 예상하는 연봉 급수와 호봉수가 있었는데, 예상과는 완전히 빗나간, 현재 받는 호봉에 딱 2 호봉만 올려서 오퍼가 들어왔다. 1호봉에 $1,500 정도 차이가 나니까, 결국 연봉 $3,000 더 많이 제안이 온 셈이다. 연봉 $3,000 오르면, 뗄 거 다 떼고 실제로 내 손에 쥐어지는 금액이 매달 $150 정도에 불과한 액수라, 그동안 별의 별 마음 고생 다 해가면서 윗사람들이랑 상담하고 면접보고 기다리고 했던 시간들이 정말 무의미해지면서 실망감이 상당했다.

뭐 어찌됐든 현 디렉터한테 얘기는 해줘야하니까, 이러이러한 호봉수로 오퍼를 받았다 라고 얘기를 해줬으며, 내 디렉터는 사범대학 인사팀 및 회계팀과 미팅을 통해 최대한 높은 호봉수의 카운터 오퍼를 넣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카운터 오퍼의 내용은 더욱 더 실망스러웠다. 카운터 오퍼는, 내가 면접 봐서 합격한 곳에서 제안한 오퍼와 같은 호봉수를 제안한다는 것이었다. 내 디렉터가 말하길, 미팅에서 어떤 얘기를 들었냐면, 같은 돈 받고 원래 하던 일 할래 아니면 같은 돈 받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더 빡세게 일할래? 였다는 것과, 내 디렉터 본인 추측이, 주립대학 내 기관들끼리 서로 어떤 무언의 불문율 같은 게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많은 인건비가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주립대학 내 직원들이 이력서 내고 면접 봐서 오퍼를 받는 정식 고용 절차를 통해 부서를 이동하는 경우, 딱 2호봉만 더 올려서 제안하자는 어떤 서로간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었다.

최대한 협상하지 못한 내 디렉터는 매우 미안한 마음에, 카운터 오퍼 2호봉에 추가로 내년 회계년도까지 보너스로 일시적인 2호봉 상승, 그리고 내년 인사고과평가시 2호봉 상승으로, 내년 11월까지 지금보다 총 4호봉 인상을 약속해줬다. 내년 2024년 7월에는 하와이 주 정부와 주정부 노조 (HGEA)가 합의한 5% 연봉 상승 또한 예정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연봉 상승은 지금 받는 것보다 $10,000 정도 오르게 되는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카운터 오퍼가 면접 본 곳에서 제안한 오퍼보다 훨씬 나은 셈이었다.

어차피 같은 조직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끼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면접보고 오퍼를 보낸 담당자에게 메일을 썼다. 오랜 시간 고민했으며, 현재 일하는 사범대학에서 카운터 오퍼로 이러이러한 것을 제안하여, 그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라고 보냈더니, 그날 퇴근 후 자기네 부서장과 회의를 좀 해볼테니까 며칠만 좀 기다려줄 수 있냐는 답장을 받았다. 나야 나쁠 거 없으니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며칠이나마 혹시나 사범대학에서 제안한 카운터 오퍼보다 더 높은 호봉수를 제안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최종적인 제안은 그냥 처음 제안했던 그 호봉수와, 중앙행정실에서 주립대학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책임이 막중한 업무를 해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와 같이 일하자 였다. 결론적으로는 사범대학의 카운터 오퍼보다 2호봉 낮은 셈이었다. 사실, 어쩌면 중앙부처에서 일하면 연봉 상승 기회가 좀 더 많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고, 그래서 진짜 합격되면 옮겨가볼까도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두 달간 이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느낀 점은, 정부기관의 꽉 막힌 점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중앙부처라고 해봤자 어차피 우리와 똑같은 규정대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봉 상승 기회는 지금 내가 일하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을테고, 그렇다면 이런 조직에서 굳이 내가 열정적으로 일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았다. 업무 시간 내에 하던 일을 집에까지 가져와서 의욕적으로 일하고, 일 벌리고, 추진하고, 도전하는 것들이 나의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다면, 그리고 일반 사기업으로 이직할 생각이 없다면, 정년퇴직과 평생연금이 보장된 이 직장에서 그냥 현상 유지만 잘하면 충분하다고 느끼게 됐다.

뿐만 아니라, 규정 중에서는, 직원 스스로가 괄목할만한 업무적인 성취 혹은 성장이 있다고 판단될지 호봉을 올려줄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이러한 것은 내 윗사람이 알아서 해주겠지 라고 생각해서 따로 말을 해보지도 않았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느낀 건, 내 몸값은 내가 직접 챙겨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 윗사람에게 내 연봉상승을 요청하려면 내가 뭔가 큰 일을 해내야하는데, 결국 이것이 일을 열심히 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는 셈이라, 앞으로 최소 몇 년간은 이직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계속 사범대학에서 근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