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는 직장 상사가 2명 있다. 한 명은 내가 일하는 부서의 부서장, 즉 Director 이며 (부서장에 대한 일화), 다른 한 명은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사수/부사수의 개념에서 볼 때 “사수”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직책은 Tech Lead라고 해서 한국에서는 “수석 개발자”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내가 일하는 곳에서의 IT 관련한 모든 일을 총 지휘한다. Iowa 출신으로, 전산학 (Computer Science) 박사 학위 (Ph.D)를 갖고있으며, 텍사스 공대에서 교수 생활도 잠깐 했었던 것 같다. 부서장에 대한 짤막한 일화는 다른 글에서 이미 언급했으니, 이번에는 사수에 대해 좀 이야기 해보려 한다.
뭐, 내 사수가 모든 미국인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봤을 때 3번째 미국인 직장 상사이다. 첫 번째는 현재 부서장이고, 두 번째는 우분투 리눅스를 만드는 캐노니컬에서 근무하는 독일사람 이었다. 이 사람도 전산학으로 박사 학위가 있었고, 학위와 무관하게 정말 굉장히 실력 좋고 아는게 많았으며, 약간 좀 nerdy하고 괴팍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면이 있었다.
그에 반해 현재 사수는, 아주아주 온화한 성격에, 왠만하면 말싸움 피하고, 거의 화내지 않으며, 늘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다. 예전에 내가 좀 중대하고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었는데, “지금에서라도 이게 발견되서 참 다행이다. 진짜 큰 일이 터졌을 때 발견했으면 문제가 심각했을 거다. 나도 사회 초년생 때 이런 비슷한 실수를 여러번 저질러봐서 이해한다. 이제부터라도 이런 실수는 하지않도록 하자” 라고 말했을 정도다. 첫 독일인 사수는 굉장히 직설적인 사람이라, 내가 뭔가를 잘못했을 때는 그걸 바로바로 얘기하면서 “너는 xx가 문제다”라고 대놓고 말해서 사실 오히려 굉장히 편했는데, 지금 사수는 나쁜 얘기를 너무 안하니까 한동안은 이것 때문에 참 고민을 많이 했었다.
미국에는 Cool 문화라고 불리우는게 있는데, 내가 이해하는 정도로 얘기해보자면, 미국인들은 cool하게 보여야한다는 나름대로의 강박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왠만해서는 잘못을 해도 cool, 실수를 해도 cool… 대체 이 양반이 진짜 사람이 좋아서 좋은 말만 해주는 건지, 아니면 미국인 특유의 cool 문화 때문에 그러는건지 너무 해깔려서, 내 부하직원 중 하나가 한국계 미국인인데 이 친구 부모님이 한국말만 구사하는 세대라 한국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어 이 친구한테 이걸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우리 사수가 사람이 진짜 좋아서 그러는 거다 라고 얘기해주더라고.
시간이 흘러 알고보니, 이 분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너무 착한 사람이라, 어쩌면 내가 여기서 직장 잡고 살기 전까지 겪어왔던 모든 불행했던 세월들이 여기서 이런 좋은 직장 상사들을 만남으로서 보답받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다.
한 가지 더 좋은 점은, 생활 패턴(밤 10시면 잔다고 한다)이 그런 건지, 건강(허리가 아프다고 하더라고) 때문에 그런 건지 잘 모르겠는데, 내 사수는 9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한다. 원래 하와이는 대부분의 직장들이 8시 출근 5시 퇴근인데, 내 사수는 직원들 쓰는 채팅 프로그램에는 항상 아침 7시쯤부터 접속해있으며 9시쯤 사무실로 와서 일하다가 4시쯤 다시 집에서 일한다고 집으로 간다 (물론 진짜로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 또한, 가끔 집에서 일하는데, 나한테는 그런 얘길 안하니까, 사실 출근 했는지 안했는지는 각자 사무실을 방문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나랑 내 사수는 각자 개인 사무실이 따로 있고, 서로 하는 일도 다르다보니 서로의 사무실에 방문할 일이 아예 없다. 내가 1주일 동안 말 안하고 집에서만 일해도 내가 출근했는지 안했는지 모를걸.
여하튼, 그래서 난 8시 반에 출근해서 4시 반에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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