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기는 유일한 온라인 게임인 이브온라인에서, 어제 재밌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었다.  이브온라인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이 글을 볼 수 있으므로, 모르는 분들이 본다는 가정 하에 소개를 해드린다.

이브온라인에서는 타 게임의 길드라는 형태의 게이머들이 모인 그룹을 게임 내 설정상 회사라고 부르며, 실제로 현실세계의 회사와 비슷한 구조로 구현되어있다.  CEO가 있으며, 회계/재무 담당도 둘 수 있으며 주식도 있고, 자금흐름, 입출금 내역, 사원 관리, 직책별 권한 설정, 주식, 의결권 행사 등등 꽤 잘만들어져있고 게임 내에 구현되어있는 회사치고는 좀 복잡하다.  그냥 무늬만 길드 수준이 아니라 잘 만들어져있는 시스템 중 하나이며,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Alliance 얼라이언스)까지 올라가는 과정 역시 비슷하게나마 존재한다.

우리 회사Corporation(줄여서 Corp 콥, 이하 콥)는 대부분의 사원들이 PvP(유저끼리 싸우는 것)를 잘 못하는 관계로 PvE(유저vs컴퓨터)만 하며, 남들과 싸우지 않고 조용히 게임만 했으면 하는 사람들이 모인, 평균연령대가 좀 높은 콥이다.  이브온라인은 서버가 나뉘어져있지 않고 전세계 단일 통합서버이며, 어디에서나 PvP가 가능하기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다녀야하며, 경찰력으로 치안이 유지되는 지역이라 할지라도 범죄는 늘상 일어나듯, 이브온라인 내에서도 역시 경찰력으로 보호받는 지역일지라도 PvP를 좋아하는 유저들이 널리고 널려서 어떻게든 범죄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브온라인에서의 범죄행위, 즉 치안이 유지되는 지역에서 남의 함선을 박살내거나 남을 죽이는 PvP 행위는 게임 내에서 일종의 범죄로 분류되는데, 이브온라인에서의 경찰은 범죄를 저지른 현행범을 응징하는 차원에서 범죄자의 함선만 박살낼 뿐, 운영상 다른 제재는 하지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제재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게임 내 요소는 있지만, 무시할 수 있는 것들이다.

최근 우리 콥은, “평일날 게임을 접속하면 딱히 할 게 없다”라는 심각한 컨텐츠 부재문제를 체감하는 중이었다.  원래 인원이 몇 안되는 조용한 콥이었는데, 콥원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서 한 번 들어오면 잘 안나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사람이 늘어나면서 규모가 점점 커지자 회사 차원에서의 일종의 복리후생, 즉 회사에서 유저들에게 할거리 혹은 컨텐츠를 제공해야하는데, 워낙 치안이 유지되는 안전한 지역에만 틀어박혀살다보니 퀘스트 (미션)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어지게 되고, 그러다보니 게임을 접속해도 재미가 없게 되는 사태가 생기게 됐다.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이라면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파티도 맺고 레이드도 다니고 하겠지만, 이브온라인은 모두가 서로의 뒤통수를 치려는 생각만 가진 무서운 게임이라, 모르는 사람과 같이 미션을 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치안이 좋은 지역에서만 살면 돈도 벌기 힘들다.  이브온라인은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컨셉을 매우 충실하게 구현하는 게임으로서, 안전한 곳에 있으면 수익이 매우 적고, 따라서 치안이 좋은 지역에서 아무리 미션만 주구장창 해봐야 돈은 얼마 벌지 못한다.  그리고 미션만 계속 반복하게 되면, 반복노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금방 흥미를 잃게되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 내가 안건을 하나 냈는데, 외곽 우주를 점령하고 있는 유저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는, 즉 치안이 전혀 없는 Null이라는 의미(라고 해석하기엔 정확하지 않은 게, 컴퓨터 쪽에서 쓰이는 전산 용어인데 일반적으로는 텅 비어있다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는 용도)의 Null Security (이하 널섹) 지역으로 이사를 가자고 제안했다.  이 널섹이란 곳은 아래 0.0이라는 글자가 적힌 지역과 느낌이나 분위기가 정말 흡사한데,

맨 왼쪽 High Sec은 강력한 우주 경찰(NPC)인 Concord에 의해 치안이 유지되는 스토리상 제국의 영토, 즉 치안력이 높다고 하여 High Security하이섹, 오른쪽 Low Sec로우섹은 제국의 영토이지만 변두리에 있다보니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굳이 따지자면 약간 조직폭력배나 양아치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우범지대 같은 느낌인 Low Security로우섹, 그 오른쪽은 널섹이라 불리우는 지역은 그림에 나온 마피아처럼 경찰의 힘이 아예 닿지않는 거대한 민간 무장 세력에 의해 철저한 자본 및 힘의 논리와 이해관계로 맺어진 복잡하고 거대한 조직의 유저들이 다스리는 지역이며, 마지막으로 웜홀WormHole Space라고 불리우는 무법지대가 있다. 널섹을 유저들이 다스릴 수 있는 이유는, 제국의 영토가 너무 커서 모든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치안을 담당할 수 없으므로, 유저에게 영토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대신 매월 해당 영토에 대한 세금을 납부해야한다.

우리는 이 0.0 널섹 지역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널섹 지역에선 거의 대부분의 유저들이 같은 Alliance동맹 아군인데, 다시 말하자면 한 지역을 점령해서 다스리는 마피아의 세력 안으로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히려 더 안전하며, 같은 얼라이언스 소속 유저가 아닌 유저가 우리 쪽 지역에 진입하면 얼라이언스 정보채널에 정보가 올라오면서 알람을 울려주기도 한다.

위의 그림은 이브온라인의 우주 전체의 지도이다.  이브온라인에는 대략 8,000 여개의 성계 (태양계)가 구현되어있으며 위의 지도는 일반적인 공간, 즉 다시 말하자면 지도와 네비게이션이라는 것이 작동 가능한 5,400 여개의 성계로 이루어져있으며, 그렇지 않은 나머지는 웜홀, W-Space 지역이다.  가운데 시커먼 부분은 스토리상 제국의 영토이며, 컬러가 들어간 곳이 바로 유저들이 다스리는 널섹 지역이다.

마피아 같은 거대한 무장 세력이 다스리는 지역을 우리가 그냥 무작정 가는 건 아니며, 또한 당연하지만 엄청난 군사력으로 무장한 세력의 영토를 감히 우리 같은 약자들이 가서 무력으로 싸워서 이길 확률은 없다.  다만, 그들이 가진 영토가 너무 많고 크며 그러한 영토에서 나오는 재화를 내부 인원만으로는 전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거대 세력은 유저들에게 특정 지역을 임대해서 살 수 있는 형태의 임대업을 운영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하자면 일종의 소작농 같은 형태로서, 원래 게임상에서 지원되는 형태의 컨텐츠는 아니지만, 대규모 조직들이 자기들 영토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유저들에 의해 창조된 컨텐츠다.  렌터 Renter라고 부르는데, 특정 태양계 혹은 성계를 임대하면 그곳에서 나오는 광물, 자원 기타 등등 거의 모든 재화를 독점 임대할 수 있다.  이브온라인의 총 태양계의 갯수가 8천개 이상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결과, 이브온라인의 우주 내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얼라이언스 몇몇 개 중 하나의 세력 밑으로 들어가서 월세 생활을 시작했다.

위의 스크린샷에 보면 달 앞에 빨간 건물이 하나 있는데, 아싸노Athanor 혹은 아타노라고 하며, 달에 강력한 레이저를 발사해서 달 지각 표면의 일부를 도려내고, 그 도려내진 표면을 건물로 끌어와서 채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장비를 갖춘 시설물이다.  스크린샷으로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저 건물의 사이즈는 초대형 캐피탈 함선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함선이 점 하나로 보일만큼 큰 건물이다.  이브온라인의 각각의 태양계에는 많은 행성들이 있으며, 각 행성들을 공전하는 달이 있는데, 일부 달 표면에는 귀한 광물들이 있어서 이브온라인 내에서는 달채광Moon Mining이 하이섹에서 채광하는 광부들의 로망이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왜냐면, 생전 보지도 못한 광물들이 나오기 때문.  잠시 보여드리자면,

이렇게 달에 레이저를 쏴서 달 표면을 폭파시켜 달의 지각 표면이 떨어져나오면,

이 덩어리chunk에 인양 광선을 쏴서 건물로 인양을 해오게 된다.  이 과정은 대략 1주일 정도 걸린다.

인양이 끝나면 광선이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곧 준비가 됐다는 뜻.

이 달 지각표면 덩어리에 또 다시 강력한 레이저를 쏴서 아주 작은 조각으로 잘게 부숴야한다.

이렇게 하고나면, 이 덩어리가 소행성대처럼 작은 조각이 되어, 채광함선들이 채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콥원 중, 자녀의 나이가 20살인 여성분이 한 분 계신다.  40대 여성분이 이브온라인을 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보통 사람은 아니지만, 이분은 전쟁이니 싸움이니 하는건 아예 관심이 없고, 우주의 소행성대에서 광물을 캐고 가스를 채취하고 그걸 공장으로 가져와서 제련을 하고 압축을 하고, 설계도를 갖고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 컨텐츠industrial contents 하나만 바라보고 이 게임을 시작하셨다는 독특한 캐릭터의 여성 유저다.  이브온라인에서는 1차 산업 (생산=채광) 및 2차 산업 (제조)의 컨텐츠마저도 굉장히 복잡하고 방대하여, 굳이 전투선을 타고 PvP를 하지않아도 알아야할 게 너무나도 많다. 아래는 텍3 (Tech III) 부품 제조 공정.

위의 인더스트리 쪽 말고도 관련된 컨텐츠만해도 얼마나 복잡한지, 실제 직업이 회계사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2차 산업이나 유통망 쪽을 즐기기 위해서 이 게임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게임 내에서 운송업을 하는 유저들도 있고, 유통으로 돈을 버는 유저들도 있는데다, 게임 운영 요소로 인한 시세 변동도 어느정도 예측해야한다.  물건을 유통시키는 부분에 있어서는 우주판 대항해시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이브온라인이 대항해시대보다 몇 배는 더 복잡하다.  물건의 시세를 몇몇 통계학적 데이터와 함께 최대 1년간 그래프로 보여줌으로서 좀 더 자세한 시세 변동 및 리서치가 가능하다.  아래는 Nidhoggur라는 캐피탈 함선의 1년간 시세 그래프.

자세히 보면 Donchian channel이니, Median이니 하는 전문용어와 함께 데이터를 보여준다.

이브온라인에서는, 치안이 잘 유지되는 제국의 영토 내에서는 초대형 함선(캐피탈 급)들은 운용할 수 없게 되어있는데, 광물을 최대한 적은 시간에 최대한 많이 캐려면 당연하지만 큰 함선을 타야한다.  그래서, 많은 유저들이 초대형 함선을 타고싶어하고, 우리가 널섹에 이사오고난 뒤 이분의 로망이 실현되려는 참이었다.  왜냐면 널섹에서는 어떠한 제한도 없이 모든 함선의 탑승이 가능하기 때문.

이분 (이하 A님)께서는 널섹 성계에 도착하자마자, 위에서 보여준 달 표면을 뜯어내는 건물Athanor를 하나 세워서 일단 임시로 거주가 가능하게 한 뒤, 달 표면에 레이저를 쏴서 표면 인양을 시작하고 곧바로 초대형 채광 함선을 구입했다.

로콸Rorqual이라고 부르는 위 대형 채광함선은 저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함선의 길이가 2.5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사이즈의 캐피탈 급 채광함선으로서, 저 함선에 장착해야하는 모듈, 드론 등을 구입하면 실제 현실 화폐가치로 환산했을 때 한국돈으로 30만원 가량이 들어간다.  채광을 하는 무인 채광 드론만 해도 한 대에 현금으로 만원이 넘는데, 그런게 10대 이상 들어가는데다, 체력도 종잇장 같아서 조금만 공격받아도 박살난다.  물론 비싼만큼 이 함선을 이용해서 채광하면 시간당 수익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며, 몇 시간만 채광해도 한 달 계정비가 나올 정도라고 한다.  현질로 유명한 국산 모 게임과 비교하면 몇 푼 안되는 돈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이브온라인의 모든 아이템은 소모품이다.  심지어 함선도 소모품 취급하는데, 건물에서 우주 밖으로 나가는 Undock 버튼을 누른다는 것은 내 함선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라는 사항에 동의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저런 30만원짜리 함선들 수백대가 단 몇 시간 만에 아무렇지 않게 터져나가는 게 이브온라인의 전쟁 규모다.  참고로, 8월 초 X47L-Q 성계에 있었던 코얼리션 간 전쟁에서 이브온라인 최초로 현실 화폐 단위로 총 피해금액 10억원 (Million dollars warfare) 찍었다고 한다…

이브온라인은, 대부분의 초심자가 게임을 접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게임이 운영되는 데에 매우 핵심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PvP다.  이브온라인에서는 내가 얼마짜리 함선을 박살냈다 라고 하는 것이 굉장한 자랑거리가 되는 게임으로서, 킬보드Killboard라는 사살전과가 개개인의 PvP 역량을 평가하는 데에 매우 지대하고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며, 심지어 인터넷에 영구 박제(https://zkillboard.com/) 되기까지 하기 때문에 이 킬보드 기록은 사실상 PvP 유저들에게는 이력서와 다름없으며, 실제로도 모든 PvP 전문 콥들이 킬보드 이력으로 입사 면접을 평가하게 된다.  물론 적대 세력에서 보내는 스파이일 수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형 얼라이언스에서는 정보 부서를 따로 두고, 입사 신청을 하는 모든 유저에 대한 신원 조사를 한다고 한다.  게다가 대형 얼라이언스에서 쓰는 프로그램들은, 스파이인지 아닌지를 어느정도 추측해낼 수 있는 기능도 구현되어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브온라인은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도 그렇지만 굉장히 컴덕스러운 게임인지라, 게임 내 수많은 것들을 API라는 것을 통해 외부에 공개해주고 있는데, 로그인 인증만 하면 해당 유저의 모든 것을 외부에서 다 볼 수 있다.  따라서, 누구랑 메일을 주고받았는지, 어떤 물건을 거래했는지, 어떤 계약을 했었는지 등의 활동을 추적해서 통계내고 분석을 해보면 해당 유저가 어떤 부 계정을 갖고있는지, 누구와 내통하고 있는지 등의 분석 및 유추가 가능하다.

암튼, 따라서 A님의 로콸은 가격이 가격인지라 큰 액수의 사살 전과를 노리는 모든 PvP 유저들에게 먹이감이 되고있으며, 반대로 로콸 유저를 보유한 콥에서는 엄청난 값어치의 광물을 캐오는 중요한 1차 산업 노동자로서의 핵심 인력이 되기 때문에 로콸 파일럿을 보호하는데 노력을 많이 한다.  게다가 이 로콸은 엄청난 성능에 엄청난 가격 때문에, 대부분의 콥이나 얼라이언스 내에서는 아주 중요한 전략 자산으로 분류된다.  물론 가격이 비싼만큼, 어지간한 숫자의 캐피탈 미만 함선들 (서브캐피탈sub-capital) 상대로 10분 이상 버틸 수 있는데다, 그 정도 시간이면 지원병력이 충분히 올 시간을 벌 수 있다.

우리는 이사온지 얼마 안된 관계로 성계 방어가 가능한 함선도 몇 대 없었고, 널섹으로 이주해온 콥원들조차 몇 명 안되는 상황이었는데, 어느날 하루는 A님이 너무 안일하게 있었던 나머지, 웜홀을 타고 우리 지역에 들어온 유저 하나가 A님에게 함선을 이동하게 해주는 모듈을 꺼버리는 재머Jammer에 당했고, 이어서 이 유저의 같은 소속 콥원들이 웜홀을 타고 떼거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문제는, 우리 모두가 거주하게될 보금자리인 값비싼 대형 건물(스트럭쳐)을 조립 중에 있어서 이 역시 공격에 취약한 상태였다.  아래 화면은 조립(앵커링) 중인 포르티자Fortizar라고 하는 캐피탈 급 함선의 정박이 가능한 건물.

다행히 이 갱단은 스트럭쳐는 관심이 없었는지-이 스트럭쳐보다 로콸이 2-3배는 더 비싸다-로콸을 타고 채광 중이신 A님께 9명 가량 되는 갱단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기습에 너무나도 당황하신 A님은 게임 내 콥원 채팅창에 긴급 채팅을 하기시작했고, 다른 콥원이 우리 콥원들이 쓰는 채팅 프로그램에 메시지를 날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긴박했는지 난리가 아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같은 동맹-얼라이언스Alliance-에도 도움을 요청하면서 A님은  정신없는 그 와중에도 사이노필드Cynosural Field라고 하는, 일종의 점대점 순간이동이 가능한 점프 포탈을 3개나 열어두신 거다.  그러자, 같은 지역에서 우리와 같은 신세의 다른 소작농 렌터콥원들이 우릴 언제봤다고 도와주러오기 시작한 거다.

처음에는, PvP 함선 상대로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Rattlesnake라는 PvE 전용함선을 타고와서 초반 시간끌기를 위해 재머Jammer를 사용하는 유저를 견제해주다 전사했고, 곧 이어 사이노필드를 타고 슈퍼 캐피탈 급 함선인 Nyx, 초대형 전략 병기인 타이탄Titan과 여러 대의 서브캐피탈 급 함선 등 방공 전력 수십여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갱단 대부분은 크루저Cruiser급 함선들이라, Nyx 같은 슈퍼 캐리어나 타이탄 앞에서 소규모 서브캐피탈 플릿은 상대하기 버겁다.  마치 구축함 같은 작은 함선들 몇 대로 항공모함을 상대하겠다는 상황.  결국 A님의 로콸은 거의 터지기 일보직전에 살아남았으며, 한 대에 만원이 넘는다는 비싸디 비싼 채광 드론도 모두 살아남았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 동맹 유저들이 굉장히 의리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PvE 전용 함선인 Rattlesnake 끌고가면 분명 터질걸 알았을텐데도 도와주러 온데다,  보통 슈퍼캐피탈급 함선이 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비싼 가격 때문에 PvP 유저들에게는 언젠가는 한 번 터뜨려보고싶은 값비싼 먹이감으로밖에 안보이는데, 슈퍼 캐피탈은 로콸과 마찬가지로 실제 돈으로 약 20-30만원 정도 하며, 타이탄은 200만원 300만원 정도 한다.  심지어 타이탄은 제작하는 기간만도 1달이 넘게 걸린다.  그런걸 끌고가면 어떤 상황일지 모르겠지만 본인들의 함선이 터질 수도 있는 각오를 해야하는 건데도 도와주러 온 거다.  정말 너무나도 고마웠다.  채팅창에 콥원들이 슈퍼캐피탈이랑 타이탄 왔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얼마나 기쁘던지.  초반에 재머를 견제해주다 함선을 터뜨린 Rattlesnake 타신 분에게는 함선의 가격을 회사 차원에서 보상해드렸다.  그와중에 다행인건, 우리 성계에 생성된 웜홀이, 질량이 큰 함선은 통과할 수 없는 작은 구멍(3C)이라서 작은 함선들만 올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번일을 겪은 A님은 청심환 하나 먹어야겠다고 나갔다오시면서, 이번 일이 자신의 이브 게임 역사상이 아닌, 자기 평생 겪은 일 중 가장 엄청난 사건이었으며, 손발이 너무 떨려서 몇시간 동안은 게임은 못하고 채팅만 하셨다.

우리 얼라이언스, 정말 의리있고 고마웠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른 누군가가 SOS를 요청하면 우리 콥원들도 다같이 우르르 몰려가게 되어, 이 또한 즐길 컨텐츠가 생겨서 이 널섹 지역에 거주하는 시기는 이브온라인을 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시기였다.

아 근데 왜 하필 내가 없을 때 이런 일이 생기는데!!!  나도 I was there 하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