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말쯤 고혈압 문제 때문에 병원을 갔다. 원래 혈압이 높다는 집안 내력이 있어서 혈압이 높은 줄은 알고있었으나, 병원에 가서 쟀을 때는 거의 200/100 정도가 나왔고, 일반적으로 병원에 가서 재면 실제보다 좀 더 높게 나온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 정도면 이미 고혈압 2기 수준의 중증이었다. 아는 동생의 소개를 받아서 가게 된 클리닉은 Family Nurse Practioner (전문 간호사, 이하 NP)였는데, 아무래도 혈압이 너무 높으니 피 검사도 같이 해보자고 해서 다다음날 10시간 공복을 유지하고나서 아침에 피 검사를 받기로 했다.

클리닉엔 월요일에 갔고, 피 검사는 수요일에 했는데 목요일 저녁 한창 운동하고 있는데 NP에게서 전화가 왔다. 검사 수치가 너무 심각해서 급하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 피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당화혈색소 (HbA1c): 9.4 (정상 5.7 미만, 당뇨 6.5 이상)
평균혈당: 227 (정상 100 미만)
콜레스테롤: 306 (정상 200 미만)
LDL콜레스테롤: 측정불가 (400 mg/dl이 넘으면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함)
비HDL콜레스테롤: 264 (정상 130 미만)
중성지방: 706 (정상 150 미만)

그외 간 수치가 약간 높았는데 (Alkaline Phosphatase 140, 정상 35-129) 이건 아마도 체내 지방/콜레스테롤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NP의 소견만 제외한다면 그외 나머지는 모두 정상이었다.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정상이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정상 수치의 최소값과 최대값의 딱 가운데였으니 진짜로 정상이었다.

당화혈색소 9.4면 정말로 심각한 수치다. 합병증 단계가 위험으로 분류되는, 즉 합병증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으로 분류되는 정도였으니 NP가 바로 당장 혈당강하제와 콜레스테롤 약을 처방해줘서 그 다음날 바로 수령해서 먹기 시작했다. 혈당강하제에서는 신이 내려준 약이라고까지 부르는 그 유명한 메트포르민 용량 500MG짜리와 Atorvastatin 20MG를 먹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메트포르민의 부작용은 겪지않았다.

사실 COVID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몸상태는 꽤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1주일에 3회씩 꼬박꼬박 한 번도 안빼먹고 운동을 해왔으며 오랫동안 1일1식을 통해 먹는 것도 적게 먹었기 때문에 나름 건강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COVID 사태 이후 2020년 4월부터 강제적으로 자택근무를 하게됐는데, 두어달 하다 말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점 길어지면서 2020년은 사무실로 출근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먹을 걸 찾기 시작했다. 와이프랑 나랑 식습관이 완전히 달라서 처음엔 좀 골치아팠는데, 나는 점심만 한 끼를 먹고 그외엔 거의 먹지않거나 오후 5시쯤 간단하게 간식을 먹는 정도만 해왔는데, 와이프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바로 밥부터 먹어야했고 그러다보니 점심도 매우 일찍-약 11시-먹는데, 나는 오후 12시는 넘어야 점심을 한 끼 먹는 생활을 몇 년 간이나 해왔었다. 그러다보니, 와이프 입장에서 점심을 2번 준비해야하는데 그게 싫으니, 그냥 나 먹을 때 너도 먹어라 아니면 없다 하는 식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먹게 됐고, 그 생활이 오래되다보니 와이프가 아침에 뭔가를 먹기위해 음식을 하다보면 그 냄새에 끌려서 같이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내 나름대로는 하루 한 끼라는 나름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점심 시간에 모든 음식물을 몰아서 섭취했다는 점인데 특히 밥을 빨리 먹는 습관까지도 있어서, 나중에 NP에게 설명을 듣고나니 내 생각으로는 이 식습관이 당뇨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않았나 싶을 정도로 잘못된 방식이었다. 물론 적당하고 올바른 양의 식사를 하루에 한 끼만 먹었으면 괜찮았을텐데, 당시의 나는 와이프가 말하길 점심식사의 양이 남들의 3배가 넘었다고 했으며, 거기에다 각종 간식, 과일 등까지 점심에 전부 몰아서 먹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점심에 혈당이 폭발했을 거다.

그날 전화를 받고나서 정말 많은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좀 많이 먹기도 했고 살도 약간 찌긴 했어도, 1일1식에 운동까지 열심히 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당뇨병 확진에 그것도 심각한 수준이었으니, 와이프랑 둘이 고생하다가 이제서야 좀 먹고살만해졌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겼는지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와이프에게 얘기를 하고 일단은 먹는 것부터 줄여나가기로 시작했다. 워낙 먹는 양이 많다보니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외 인터넷에서 당뇨 및 혈당 관리에 대해 수많은 글을 읽어봤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혈압과 공복혈당을 재고 그것을 아이폰 Health 앱에 기록했으며, 매일 매 끼니마다 무엇을 먹었는지 엑셀파일에 혈당과 함께 모든 것을 기록했다. 음식을 할 때는 의외로 꽤 많은 양의 설탕이 들어가는데, 요리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음식에 설탕을 넣는 것은 단순히 단맛을 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며 설탕이 들어가면 맛이 확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의외로 설탕이 꽤 많이 들어간다. 내가 요리를 할 줄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점은 잘 알고있어서 코스트코 가서 설탕 천연대체제인 스테비아와 에리스리톨으로 모든 요리의 설탕을 대체하기로 했으며, 그동안 매일 하나씩은 꼬박꼬박 챙겨먹던 초콜렛도 끊고 그외 단맛이 나는 건 전부 버렸으며 식사량을 엄청나게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식후 혈당은 여전히 200, 220 등이 나오기도 했었다.

가장 이해가 안가는 건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도 어떤 날은 혈당이 적게 나오고 어떤 날은 많이 나오는 것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기억은, 하와이에서 나름 건강식으로 유명한 이치리키 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혈당이 무려 260이 나왔던 것이었다. 고기 약간에 거의 대부분이 채소인 일본식 샤브샤브로서 국물이 좀 달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설탕을 많이 넣어서 그런 맛이 나온게 아닌가 싶었다. 식후 2시간 후의 혈당 수치의 경우 정상인은 140 미만, 200 이상은 당뇨병이다. 당뇨병 판정을 받았으니 식후 혈당에서 200, 220 등이 나오는 당연하겠지만 거의 먹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인 식사에서도 그 정도가 나오니 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번 클리닉 갈 때 메트로포민 용량을 좀 늘려달라고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메모해놨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하루는 넷플릭스에서 What the health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라는 다큐를 보게 됐다. 영상을 보다보니 채식주의자들이 채식을 주장하기 위해 만든 영상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는데, 채식을 하다보면 반드시 고기를 통해서만 섭취할 수 있는 비타민 B12 등 주요 영양소가 결핍되서 나중에 건강상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 등을 얘기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난 이런 점 등을 예전부터 잘 알고있었고, 채식주의를 선언했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최소한의 필요한 만큼 육식을 한다는 점도 잘 알고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는데 영상을 안보신 분들을 위해 스포를 하지않는 선에서 적어보자면, 영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분의 사례를 보고나서도 채식이 정답은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혈당을 정상수치까지 잡을 수만 있다면 그게 채식일지라도 도전해보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서 그날 바로 채식을 시작했다. 그것도, 가장 빡세다는 계란도 안먹고 유제품도 안먹는다는 비건을 딱 한 달만 도전해보기로 했다. 한 달만 해서 정말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앞으로 평생 비건으로 살 생각도 있었다.

생각보다 할만했었다. 한국인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비건으로도 먹을 게 충분히 많았는데, 비빔밥 파전 김 김치 이런 음식들은 채식을 안하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음식이므로 끼니를 때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마트 등에서 음식을 구입할 때 생겼는데, 의외로 우유나 달걀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뭘 사든 성분표를 보면서 사는 습관이 생겼는데, 설탕은 얼마나 들었는지, 말토덱스트린은 얼마나 들었는지, 유제품이나 달걀이 들었는지 등을 정말 꼼꼼하게 보면서 구입했다. 그나마 참 다행스러운 것이 미국에는 채식에 대한 꽤 다양한 음식들이 많아서, 단백질 쉐이크도 식물추출 쉐이크 (Plant-based)도 있었고 대용량 두유, 대용량 아몬드유, 마카다미아유, 식물 버터, 콩으로 만든 고기인 Beyond Meat, Don Lee’s Veggie Burger 등 도움이 많이 됐다.

정말 철저하게 비건을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혈당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계란조차 넣지않은 완전 비건 비빔밥을 먹어도 식후 혈당이 220을 넘는 등 한 달을 해봤지만 나름대로 노력을 한 것에 아무런 성과가 없자, 결국 깨달은 것은 채식만이 답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채식이 답이 아니길 기대했던 것도 있었다. 좋아하는 고기를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못먹는 일이 생기진 않길 바랬기 때문인데, 그 넷플릭스 다큐를 보고나니 채식은 중단하더라도 앞으로 우유와 치즈는 먹고싶지 않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었고, 달걀 역시 가능하면 먹지않거나 먹어도 하루 한 개까지만 먹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2달이 넘는 기간 동안 매일 아침 공복혈당, 점심 식후 혈당을 아이폰 Health 앱에 꼬박꼬박 기록하면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를 체크했는데, 위에 언급했듯 같은 음식을 먹었음에도 혈당이 상이하게 다른 날들 심지어 비건으로 비빔밥을 해먹은 날조차 혈당이 220을 넘어갔으니 점점 실망이 커져가다가 채식을 그만두기로 한 날 그동안 먹고싶었던 치킨 플레이트 (하와이에서 점심에 주로 먹는 음식, 밥 2 덩어리, 반찬, 치킨)를 사서 밥은 거의 건드리지 않고 치킨만 먹고 2시간 후에 혈당을 쟀다.

Chicken Plate

식후 혈당은 무려 150 이었다. 정상인의 범위가 200 미만이며, 나는 혈당강하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정도면 정말 낮은 숫자로 보였다. 이날을 계기로 원인이 어쩌면 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평소 먹는 밥도 잡곡밥, 그것도 흰쌀의 비율이 반 밖에 안되는 여러가지 잡곡에 콩까지 섞은 밥을 먹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날을 계기로, 원인은 밥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날부터 여러가지 실험을 해봤다.

밥은 성인 밥 숫가락으로 4숫가락 정도 밖에 안되는 양-거의 초등학교 1학년 정도 되는 나이의 아이들이 먹는 양-만 먹고 그외는 거의 대부분 두부, 야채 그리고 고기로 배를 채웠다. 어떻게보면 저탄고지 식생활이랑 비슷해 보이지만, 당뇨 환자는 일반적으로 고지혈증의 문제도 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지방을 많이 먹으면 큰일난다는 얘기를 많이 봐서 기름기 섭취는 가능하면 하지않게끔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두부, 야채, 고기로 구성된 식사는 식후혈당이 160 이상으로 올라가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결론은 쌀, 밀가루, 설탕 섭취만 최소화해서 적당한 양을 섭취하니 좋은 혈당수치가 나왔다. 요즘은 무설탕 초콜렛에 무설탕 아이스크림까지도 나오는 시대라 단것에 대한 욕구충족도 충분히 됐다. 게다가 당뇨 판정을 받은 날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껴서 운동의 강도를 더 늘렸는데, 현재 8카운트 슬로우 버피를 연속으로 쉬지않고 100개까지 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서, 당뇨 판정 당일 기준 지금까지 체중을 6킬로를 줄였다. 현재 체지방은 약 18% 정도인데, 운동할 때마다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서 앞으로 이런 식습관+운동강도를 유지하면 조금씩 더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빔밥 등을 먹을 때 밥을 조금이라도 더 넣으면 혈당이 170까지 상승했고, 라면 떡볶기 같은 음식은 200이 넘게 나왔다.

당뇨 판정 이후 3개월 후 다시 피검사를 하러갔다. 이번 결과는, NP가 말하길 자기가 지금까지 본 환자 중에서 이렇게 경과가 좋아진 건 몇 명 안된다고 하더라.

당화혈색소 (HbA1c): 6.1 (3개월 전 9.4, 정상 5.7 미만, 당뇨 6.5 이상)
혈당: 96 (3개월 전 227, 정상 100 미만)
콜레스테롤: 114 (3개월 전 306, 정상 200 미만)
LDL콜레스테롤: 42 (3개월 전 측정불가, 400 mg/dl이 넘으면 측정 불가능, 정상 100 미만)
비HDL콜레스테롤: 63 (3개월 전 264,정상 130 미만)
중성지방: 107 (3개월 전 706, 정상 150 미만)

당화혈색소 6.5부터 당뇨병으로 진단하는데 6.1이 나왔으니, 3개월만에 당뇨 전단계로 분류되는 숫자가 나온 것이며, 콜레스테롤은 사실상 정상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나왔다. 물론 콜레스테롤 약을 먹고있으니 그 효과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일단 콜레스테롤 약은 당분간 더 복용하자고 하더라. 당뇨 진단을 받고나서 건강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해서 과거 피검사 했던 기록을 열람해봤더니 2014년도에도 이미 공복혈당이 127로 당뇨나 다름없는 상태였었다. 어떻게 보면 높은 혈당으로 최소 6년 이상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는데 꽤 오랜 기간을 당뇨병을 가진 상태에서 내가 먹었던 음식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했다. 3인분이 넘는 떡볶이+라면을 허겁지겁 먹고 거기에다 당도 높은 과일인 바나나에 초콜렛을 먹었으니 혈당이 얼마가 나왔을지 상상이 안간다. 더군다나 아이스크림도 워낙 좋아해서 와이프랑 배스킨라빈스에 가면 파인트 사이즈 한 통을 둘이 같이 그자리에서 한 번에 다 먹었는데, 정말 혈당 폭발시키는 아이스크림을 그것도 파인트 사이즈의 2/3을 나 혼자서 먹었으니 아찔하더라. 이제 그런 아이스크림을 못먹는다는 점은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Keto 아이스크림이라고 해서 무설탕 아이스크림이 있어서 욕구충족은 충분히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당뇨는 불치병이라 한 번 걸리면 평생 관리해야한다고 한다. 식사량도 1주일만 버티면 줄어든 양으로 적응된다고 하던데, 난 여전히 먹는 양이 부족하더라. 밥 먹고나서 혈당 쟀을 때 적게 나오면 기쁜 마음으로 과일 하나 먹을 때 행복할 정도인데, 이외에도 밀가루 음식, 빵, 떡볶기, 떡, 감자, 고구마 등 못먹는 음식도 많고 참아야할 것도 많아서,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께 당뇨 걸리기 전에 몸 관리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